우리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대상을 관찰하고 판단하고 경험한다. 인간의 뇌는 망막을 통해 이미지의 형상을 보고 세계를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대상은 망막에 비춰지는 그대로가 아니기 때문에 실재의 대상과 오차가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가 쉽게 대상에 대한 인식의 오류를 범하는 이유는 아마도 타 감각에 비해 시각정보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불완전성은 극복해야할 것이라기보다는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끝없는 이미지의 혼재 속에서 진짜와 가짜의 의미는 더 이상 필요 없으며 내가 보고 믿는 것이 곧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강훈은 2차원 위에 3차원을 표현하기 위한 원근법이 주는 착시와 환영을 작품에 적용하여 대상의 본질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이를 통해 개개인의 시지각적 체험 안에는 다양한 인식의 과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이강훈의 작업은 대상과 인식된 대상에서의 차이를 발견하고 이에 주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바탕에는 사람의 인식체계가 불완전하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있다. 인식은 감각기관이 아닌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대상에 대한 인식은 개인이 처한 특정한 상황, 이념, 문화적 배경에 따라 제각각의 모습을 할 수 밖에 없고 어떤 방식이 옳다고 할 수도 없다. 이처럼 대상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인식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그 이미지의 표상일 뿐이다. 예로 우리 관념 속에 존재하는 육면체의 이상적인 형태는 면이 여섯 개가 존재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보는 시점에 따라 그 형태는 제각각이다. 작가는 같은 대상일지라도 보이는 시점에 따른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들을 시각화함으로써 실재와 형상 사이에서 생기는 간극을 보여준다.
우리의 눈에 인식되는 사물은 고정되지 않고 항상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떠한 사물을 볼 때에 상황과 경험에 따라 그 형태는 계속 변화한다. 작가는 이러한 개개인에게 존재하는 주관적인 시선을 소실점에 의한 원근법을 통해 가시화한다. 고정된 시점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신체구조의 한계성은 우리가 가진 시각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회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원근법은 평면 형태의 2차원 공간에 깊이를 표현하여 3차원의 공간감을 구현하는데 활용되어 왔다. 반면 작가는 2차원과 3차원을 교란시키는 접근방법을 보여준다. 가변 캔버스를 통해 평면이 가진 경계와 틀을 극복하고 각각의 기하학적인 형상을 하나의 오브제로 인식시킴과 동시에 물리적 높이를 가진 실재하는 물질로 환원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현실의 공간에 배치한다. 외부 공간으로까지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는 새로운 시도는 작품과 외부 공간이 융합되는 생경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우리의 인식체계를 뒤 흔든다.
예술이 창조해내는 세계가 허상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예술의 본질은 환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환영을 위해 고안된 원근법은 넓은 의미에서는 착시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착시는 대상의 본질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나라는 지각의 주체와 외부세계와의 관계를 경험하게 하는 촉매가 되어 준다. 이처럼 소실점을 적용하여 인식된 대상의 형태를 물질로 구성하고 공간에 연출하는 이강훈의 작업 과정은 대상에 대한 또 다른 인식이 실재 속에 존재할 자리를 마련해준다. 현상을 인식한다는 것은 대상을 각자의 의식을 통해 왜곡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무한한 의미생산이 가능한 열린 공간을 시도하고 예술을 통해 우리에게 그동안 자신이 믿고 있었던 현실과 가상의 구분되는 것이 모호해지는 현상 속에서 새롭고 유연한 사고로의 전환을 제안한다. 우리가 이강훈의 작품을 통해 직면하는 것은 대상의 본질적 형상이 아닌 대상의 미처 지각되지 못한 불완전성을 채우는 사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