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개념과 영영을 한마디로 요약하기가 용이하진 않지만 우선 평면으로 국한시켜서 조형적 방법론으로 분류한다면 드로잉, 회화, 판화, 디지털 프린트 등으로 열거할 수 있으나 재료와 기법에 따라 사진과 영상, 컴퓨터를 활용하는 것 외에도 다중매체(multimedia)의 결합으로 이른바 동시대에 있어서, 평면미술의 범주는 무한으로 확대되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것은 기계문명과 그 메커니즘(mechanism)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며 현대미술의 다변화로 인하여 입체와 평면, 설치, 퍼포먼스와 이벤트 등, 그 콘텐츠의 분류도 쉬운 일이 아니며 의미 있는 일도 아니다. 이러한 사유로 미술사적인 분류도 예외일 수는 없다고 본다.

이강훈은 인간의 일상에서 거주, 출입, 그리고 소통과 동선(moving line)은 결코 무관할 수 없으며 그것에 필연적인 요소로서 ‘문’이 가시적인 오브제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기에 이르른다. 아울러 ‘문’을 통하여 공간의 분할과 그 분할이 있는 후를 전제로 하는, 상대적이며 가변적인 관계성을 이상적으로 정립시키고 시각화 시킨다. 그것은 형이하학적이며 가시적인 ‘문’과 공간으로부터 그것들이 상징하는 자아, 소통,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성 등, 형이상학적인 것으로의 전환과 확립을 지향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작가는 마치 캔버스에서 초벌의 바탕칠(foundation)을 하듯이 ‘문’을 픽셀(pixel)로 설정하고 반복, 나열해 간다. ‘문’을 통한 공간의 구획과 소통을 인간의 본질, 개성, 그리고 관계성으로 연계시켜 나가기 위함이다. 작가는 “자아와 개성은 타인과의 관계성을 통해서만 확립되어지고 소통은 인간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위의 것들은 관계성의 총체적 결과물” 이라고 역설하는 가 하면 “‘문’과 소통의 개념은 나눔과 공간의 분할을, 또한 소통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것” 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소통은 “소통의 부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호간의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한 것” 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우리의 ‘삶’ 속에서 소통은 존재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각 자의 인생관, 주관, 철학적인 사유의 유무와 습관에 따라 조율되어질 뿐이고 그 내면의 실존적인 상항과 관점은 변함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다만 상호작용의 관계에서 상대성원리의 정, 반, 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포용, 정리, 이해하는 것의 양상일 뿐이다. 그렇지만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고 합리적인 상호관계를 추구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며 가치있는 삶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이강훈의 작품에서 반복되어지는 ‘문’들의 화소들은 우리들의 일상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다. 현대인들의 일상은 생존의 상황과 유형에 따라 작위적이거나 위선적일 수 있으며... 때때로 이러한 현대인이 갖는 삶의 양태가 개성처럼 오인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픽셀로 반복되는 ‘문’의 형상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해온 다양한 패턴들로서 자주 봐 온, 어디선가 스쳐지나간 듯한 ‘문’들일 수 있으며 그 ‘문’들의 패턴(pattern)은 생존과 일상, 인생관 등의 가변성과도 연계되어짐을 은유적으로 표상화 한다. 그러나 작가가 추구하는 다소 사변적이고 논리적이며 스토리텔링(story-telling)한 조형성은 동, 서의 미학적인 동질성을 추출하고 조율시킴으로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온다.

철학적인 사유를 서구의 기하학(geometry)적인 미학에 입각한 구도(composition)에 적용시키는가 하면, 불교미술인, 단청과 오방색을 컬러 윌(color wheel)에 담아 순환성의 색방구조를 활용하여 윤회사상을 은유하기도 한다. 그것은 구상적인 형상의 ‘문’의 반복과 그 픽셀을 함축하는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양적인 사상을 우선하는 사유의 발원만은 아니다. 동, 서를 초월하는 미학의 동시성을 구현하는 조형적인 방법론에 충실하는 것이다. 원형에 내재되어진 정방형의 형태는 곡선과 직선형의 모서리의 대비로 시각적인 긴장성과 함께 쾌감을 자아내고 보색과 유사색의 각기 다른 색상의 조합은 조화의 향연을 불러온다. 단단하고 내밀한 작가의 조형성은 철학적이며 구성주의적 요소도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상징주의와 추상성이 엿보이는 등 글로벌아트(global art)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디지털 프린트의 방법론이 계속될 것인지 또 다른 조형성에 눈길이 멎어 새로운 미학에 탐닉할 것인지... 기대해 본다.

 

글: 박종철 (미술평론, 컬럼니스트)

출처: 월간 전시가이드 2015년 5월호, 박종철 컬럼